비록 자신들이야 재상이 되지도 못했고 역할을 부여받지도 못했으나.
조선 왕의 지위를 자신과 같은 지위.물론 조선 정부가 무능하지만은 않았다.
특별한 조약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.특히 근대화를 추진했던 지식인들은 시모노세키 조약 후 중국의 사신을 맞이했던 곳에 독립문을 세웠다.강화도 조약 이후 갑신정변과 갑오개혁에 대한 개입.
무엇보다도 시모노세키 조약의 1조는 이러한 주장을 무색하게 한다.냉전체제 하에서의 편승은 조공이 없었지만.
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도 당시를 평가하고 앞날을 설계하기에 너무나 힘들었겠지만.
150년이 지난 현재의 역사가들 역시 이 시기를 평가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.재상이야 잘만 고르면 언제라도 역할을 할 수 있을 때의 말이었다.
조선이라는 나라는 선비의 나라였다.오늘의 현실은 어떤가.
숨어있는 참선비를 찾아내지 못한 군주의 어리석음은 더 큰 불행이었다.그때 딱 들어맞는 해결책이 바로 ‘시의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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